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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Books

(책) 그리스인 조르바

by 우프 2017. 8.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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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언제 구입한 책인지 기억 나지 않을 정도로 예전에 구입한 책이다. 박경철의 그리스 기행문인 '문영의 배꼽 그리스'를 통해 박경철의 그리스 여행의 계기가 바로 니코스 카잔차키스와 그의 책들이라는 것을 접하고 궁금하여 이 책을 구입했다. 사실 이 책을 읽기를 몇번이나 포기하다 오랜 기간 가방에 넣고 다니며 조금씩 읽다가 결국에는 책이 너덜너덜해지고 나서야 책을 다 읽을 수 있었다.


그리스어로 쓰인 책을 번역한 것이기에 어려울 수도 있지만, 내 생각에는 한국어로 번역한 사람이 너무나 많은 한자어와 잘 사용치 않는 단어들을 사용하였기에 읽기 어려운 것 같다. 한 페이지를 읽고 무슨 내용이었는지 머리에 남지 않아 다시 그 페이지를 읽기를 반복하였다. 그리고 저자도 시적인 문구를 많이 사용하여 나 같은 공돌이가 공감하면서 읽기가 어려웠다. 즉, ' 자연현상을 이렇게도 표현하네!'라는 생각이 드는 문구는 많았지만, '이 문구는 너무 아름다워 어디 적어놓기라도 해야할까?'라는 생각을 이끌어내지는 못했다는 말이다. 물론 이 부분은 나의 감수성이 부족해서일 수도 있다.


이 책의 화자는 고리타분한 지식인인 반면, 주인공인 조르바는 너무나 자유롭고 막나가는 인생을 보낸 인물이다. 지식인으로서 수많은 책에서 얻지 못하는 진리 (신, 사람, 운명, 죽음, 여성, 도덕 등)를 일자무식인 조르바가 경험으로 터득하여 나름의 진리를 밝힘으로써 두 케릭터가 극명하게 대조된다. 뭐 나름 답답한 지식인의 면모보다는 조르바의 말이 더 속 시원하고 정상적으로 느껴지기는 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조르바 때문에 거북살스러운 부분이 너무 많았다. 기본적으로 조르바라는 실존 케릭터가 1930년대 인물이라 그런지 여성편력이 너무 심하고, 여성에 대한 비하가 너무 심하다. 요즘에는 이런 내용이 정상적인 책에 실릴 수 있을까 하는 정도이다 보니, 여자분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조르바를 상당히 혐오했을 것 같다. 


이 책을 다 읽고서도 왜 그렇게 유명한 책인지는 잘 모르겠다. 나로서는 별로 공감되지 않는 수많은 시적인 문구 때문인지 조르바라는 독특한 인물때문인지.... 아무튼 긴 시간이 걸렸다는 이유로 이 책을 읽어봤다는 그 성취감?은 오래 남을 것 같다. 이제 고전을 읽는 일은 당분간 없을 것 같다 ㅡ.ㅡ;;;


다음은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으며 모르는 단어들을 정리한 단어장이다.




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 이윤기 | 열린책들 | 2009 12 20 | 원서 : Zorba the Greek


20세기 문학의 구도자,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대표작  『그리스인 조르바』는 카잔차키스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 작품으로, 호쾌하고 농탕한 자유인 조르바가 펼치는 영혼의 투쟁을 풍부한 상상력으로 그려 내고 있다. 책의 주인공 조르바는 실존 인물로서, 카잔차키스는 『영혼의 자서전』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힌두교도들은 '구루(사부)'라고 부르고 수도승들은 '아버지'라고 부르는 삶의 길잡이를 사람 선택해야 했다면 나는 틀림없이 조르바를 택했을 것이다……. 주린 영혼을 채우기 위해 오랜 세월 책으로부터 빨아들인 영양분의 질량과, 겨우 사이에 조르바로부터 느낀 자유의 질량을 돌이켜 때마다 책으로 보낸 세월이 억울해서 나는 격분과 마음의 쓰라림을 견디지 못한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메토이소노' , '거룩하게 되기' 개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것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 육체와 영혼, 물질과 정신의 임계 상태 너머에서 일어나는 변화이다. 포도가 포도즙이 되고 포도주가 되는 것이 물리적, 화학적인 변화라면, 포도주가 사랑이 되고 성체(聖體) 되는 것은 바로 '메토이소노' 것이다. 카잔차키스는 바로 책에서 조르바의 거침없이 자유로운 영혼의 투쟁을 통해 '삶의 메토이소노'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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