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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Books

(책) 발해고

by 우프 2017.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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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고(渤海考) - 지혜의 샘.한국고전총서 1

유득공 (지은이) | 송기호 (옮긴이) | 홍익출판사 | 2000-01-10 | 원제 渤海考 (1784년)

책소개

잊혀진 나라 발해를 역사의 표면으로 다시 끌어올려 한국사의 한 획을 그었던 유득공의 <발해고(渤海考)>의 번역본. 20여 년 동안 발해사를 연구하고 있는 서울대 송기호 교수가 번역을 맡았다.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인 1권본 <발해고>를 저본으로 삼고 있는 이 책은 단순히 번역만 된 책이 아니다. 전공자인 송기호 교수의 상세한 설명과 함께 한문 원문, 영인본을 아울러 실어 자료의 가치를 높였다. 또한 1998년에 발굴하여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던 '삼채여용', '베개' 등의 발해 유적 화보도 함께 싣고 있다.


발해고를 지은 유득공은 이덕무, 박제가와 함께 북학파의 일원으로 규장각 검서관을 지낸 인물. 규장각의 도서를 두루 읽었던 그는 발해역사를 발해의 왕, 신하, 지리, 관청과 관직, 의식과 복장, 그리고 생산 물품, 언어, 외교문서, 후예국가 등으로 구성하여 저술했다. 


서문에서 보이듯이 유득공은 한국사를 단순히 신라의 통일로 한정하지 않고, 발해를 세운 대조영을 고구려인이라 봄으로써 한국사의 범위를 확대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유득공은 당시 흩어져 있던 발해의 역사를 치밀하게 접근하고 있다. 언뜻보면 단순한 역사 기술처럼 보이지만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많은 사료들을 통해 체계적으로 그 역사가 정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발해사를 우리 역사에 넣고자 한 저자의 노력이 경탄스러울 정도이다.


한창 인문학 열풍이 대한민국을 덮치고 있을 때, 나 또한 우연한 기회에 접한 '리딩으로 리드하라'라는 책에서 추천한 유득공의 발해고라는 책을 구입했다가 그냥 책장에서 묵혀놓고만 있었다. 근자에 여유시간을 보낼 용도로 다시 책장에서 책을 꺼내 읽었다.


먼저, 지금으로 부터 233년 전인 1784년 조선시대 유득공이라는 사람이 한문으로 적은 글을 2000년에 송기호라는 분이 한글로 다시 옮긴 글을 읽는다는 데서 문자와 역사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었다. 200년 전의 사람의 생각을 책으로 전해받는 느낌.... 이렇게 생각하면 고전이 대단하것 같긴하다. 책 읽기 전에 옮긴이가 송기호라길래 귀에익은 이름이라 살펴보니 예전 광우병과 FTA 당시 TV에 자주나왔던 민변소속의 변호사와 동명이인인 서울대 교수였다.


학창시절 남부지방을 통일신라가 지배하고 북쪽지방을 발해가 지배한 시기를 남북국시대라고 배웠는데, 이러한 남북국시대라는 새로운 관점을 바로 이 책인 발해고를 통해 유득공이 주장했다고 한다. 책의 '유득공 서문'에 이러한 내용이 명확하게 나와있다. 특히 고려때 발해사를 제대로 기록해놓지 않아 토문강 북쪽과 압록강 서쪽의 땅을 되찾지 못했음을 안타까워했다. 혹시 발해고를 읽어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유득공의 서문'이라도 읽기를 추천한다.


발해에 대해서 국사시간에 잠시 배운 것이 전부이어서 이번에 발해고를 읽으면 중국과 한국사에 대해 인터넷 검색을 제법 많이 했었다. 여진족, 거란족, 말갈, 요나라 등 북방민족들에 대해서 오랜만에 들어보다보니 매우 헷갈렸기 때문이다. 또한 책을 읽고 발해에 대해 검색해보았는데, 대부분의 내용이 발해고의 내용을 풀어서 소개하고 있을 정도로 발해관련 문서가 부족하거나, 유득공이 정리를 잘했나보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유득공이 없었으면 지금의 한국인에게 발해라는 나라는 정말 인식치도 못한 나라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하면 이 분이 정말 위대한 분이라 느껴진다.


다음은 발해고를 한번 읽고 다시 통독하면서 발해와 관련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대조영의 아버지 진국공(성이 대씨이고, 이름은 걸걸중상)의 뿌리는 속말말갈인 (말갈족으로 속말, 백돌, 안차골, 불열, 호실, 백산, 흑수 등의 일곱부족이 있으며, 이중 속말과 백산은 고구려에 예속되었다.)으로 고구려에 예속된 부족인이고 (즉, 대조영의 아버지가 말갈계 고구려인이다.), 우리가 아는 대조영 (고왕, 高王)은 일찍이 고구려 장수였고 당나라를 피하여 고구려와 말갈족들을 이끌고 698년 동모산에서 발해를 건국하였다. 당나라 현종때인 713년에 이르러 당나라에서 발해왕을 좌효위대장군, 발해군왕, 홀한주도독에 임명하여 말갈이란 칭호 대신 발해라는 명칭으로 나라로 인정받게 되었다. 이후 번성하여 당나라로 부터 해동의 번성한 왕국 (해동성국)이라 불리게 되었다. 14세 왕 인선에 이르러 거란족이 세운 왕조인 요나라에 의해 멸망하였다. 요 태조와 황후가 발해왕과 왕후로부터 항복을 받을 때 탔던 두 마리의 말이름인 오로고와 아리지를 발해왕과 왕후가 쓰도록하고 요나라 수도에 가두는 수모를 겪었다. 이 때가 요 태조 및 후당 명종때인 926년이지만, 『요사』에는 요 태조가 발해 국가를 멸망시키지 않았다고 밝히고 1003년에 발해가 요나라에 조공하였다는 기록으로 보건데 부흥운동이 송나라를 거쳐 금나라 초기까지 이루어졌다.

국서고(國書考)에서는 일본 문헌에서 찾은 발해가 일본으로 보낸 국서들을 찾아서 모아놓았는데, 발해와 일본간 왕래가 생각보다 잦았다는 것에 놀랐고, 일본서에 실린 국서라서 그런지 발해와 일본이 상당히 대등한 관계였다 것에 조금은 놀랐다. 또한, 무왕인 무예가 일본국 성무천황에 보낸 국서에 보면 "무예는 욕되게 여러 나라를 주관하고 외람되게 여러 번국을 아우르게되어, 고구려의 옛 터전을 수복하고 부여의 풍속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라고 하여 발해가 고구려와 부여를 계승한 국가라는 것을 적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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