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ulture/Books

열한 계단

by 우프 2019. 1. 21.
반응형

<열한계단>은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의 작가 채사장이 자신의 삶을 한 계단씩 오르도록 도와준 책들을 소개하는 형식의 글이다. 이미 2년전에 발간된 책이지만 2019년 초인 지금도 여전히 서점에서 베스트셀러의 한 구석을 차지할 정도로 인기가 좋은 책이다. 아마도 단순히 책을 소개하기 보다는 지은이의 성장과 함께 영향을 끼친 책에 대해 기술해서 진정성이 느껴져 사람들의 마음에 더 와닿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아래의 목차만 봐도 지은이의 살아오면서 주된 관심사가 무엇이고 어떻게 성장했는지 엿 볼 수 있다. 처음 목차를 보고 '왠 기독교?'라고 생각했다가 '그런데 불교까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철저하게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방식을 추구하려는 나에게 종교라니' 괜히 삐딱하게 생각했다가 그 뒤에 과학이 나오는 것을 보고 종교에 심취해서 적은 글은 아니겠다라는 희망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을 다 읽고 책을 덮고 생각해보니 나는 채사장이 올라간 총 11개의 계단 중 겨우 7계단 정도만 주변 사람들을 따라 올라왔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이 책도 7계단까지는 재미있게 읽었지만, 큰 죽음의 문턱을 넘어본 적이 없어서 인지 8계단 부터는 사실 조금 따라가기 버겁고 크게 공감이 되지도 않았다. 아직도 넘어야할 삶의 계단이 많이 남았다는 것에서 안도감도 들지만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에 대해 깊게 고민해야한다는 점에서 두려움도 드는 것이 사실이다. 삶과 죽음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할 때 즘 다시 이 책의 후반부를 찾을 것 같다.

첫 번째 계단, 문학 - 죄와 벌: 열여덟: 태어나서 처음으로 책을 읽었다

두 번째 계단, 기독교 - 신약성서: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펑펑 울었다

세 번째 계단, 불교 - 붓다: 인생에서 가장 완벽하고도 아름다운 순간을 만났다

네 번째 계단, 철학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집을 나와 세계를 떠돌았다

다섯 번째 계단, 과학 - 우주: 하릴없이 사치스럽게 책을 읽었다

여섯 번째 계단, 이상 - 체 게바라: 이상적인 인간을 만났다

일곱 번째 계단, 현실 - 공산당 선언: 현실적인 인간이 되었다

여덟 번째 계단, - 메르세데스 소사: 어느 날 갑자기 삶이 무겁게 정지했다

아홉 번째 계단, 죽음 - 티벳 사자의 서: 모든 것이 때마침 마무리된 날, 죽기로 결심했다

열 번째 계단, - 우파니샤드: 광장에 섰다

열한 번째 계단, 초월 - 경계를 넘어서: 여행이 시작되었다



이 책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 있는 부분은 니체와 관련된 부분이어서 이에 대해서 간략히 정리하고자 한다. 니체라고 하면 유명한 말이 바로 "신은 죽었다."이다. 바로 이 말이 근대를 끝내고 현대를 시작하는 이정표라고 한다. 

니체는 근대 서구는 고대 그리스 플라톤주의의 형이상학적 이분법이 르네상스를 거쳐 이성중심주의가 주류 사상이 되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성중심주의의 뿌리가 되는 플라톤주의의 형이상학적 이분법이 고대 그리스에서는 현실세계와 이데아를 구분했다면, 중세에는 천국과 인간세계를 구분하였다. 근대에서는 지나친 이분법으로 이성과 합리성만이 강조되어 이성적이지 않은 모든 것 (감정, 욕망, 신체, 현실, 여성, 동양 등)은 반이성적인 것으로 평가절하하고 이에 반대되는 이성적인 존재의 상징인 남성, 서양의 지배를 받는 것은 당연시되었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형이상학적 이념, 사유, 종교, 도덕만을 추구한 나머지 구체적인 현실을 망각한 것이다. 니체는 플라톤주의, 그리스도교, 이성중심주의, 형이상학적 이분법을 끝내려하고 이렇게 선언했다. "신은 죽었다." 있지도 않은 이상적이고 불변하는 본질의 세계와 같은 초월적 세계를 추구하는 것을 끝내고 내가 발 딛고 있는 구체적인 현실로 돌아오라고 말한 것이다.

니체는 이러한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을 이어받은 그리스도교도 강하게 비판하였다. 그리스도교는 삶을 구원받기 위해서는 인간 개개인의 주체적인 노력보다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에게 의지해야하고 순종과 인내, 복종을 강조하고 있다고 밝히고, 니체에 따르면 그리스도교의 도덕성은 원한과 증오에서 출발한 노예의 도덕에 기반을 둔다고 강하게 말했다.

고대 그리스의 자유인들은 주인으로서 '좋음'을 추구했고, 주체성, 강인함, 자유, 스스로의 주인이 되는 덕목이 요구되었고, 노예에게는 이런 덕목보다는 순종, 복종, 겸손, 절제와 같이 노예답게 행동할 때가 도덕적이다. 이러한 가치체계는 노예의 입장에서는 주인은 악으로, 노예는 선으로 발전하여, 나약함의 상징이었던 순종과 복종 그리고 겸손과 절제는 이제 선한자의 덕목으로 그 가치가 상승한다. 이러한 가치변화가 로마시대의 유대인들에게 적용되어, 오랜 기간 노예상태로 지배받았던 무력감이 원한과 증오로 남아 이것이 그리스도교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니체는 당시 그리스도교에 뿌리 깊은 노예의 도덕, 원한과 증오의 도덕이 유럽을 잠식하고 있다고 근대 유럽사회를 진단했다. 교회에서 목사들이 교인들에게 순종과 복종을 말하고, 겸손과 절제를 강조하는 점을 볼 때 틀리지 않은 듯하다. 이러한 겸손하고 절제하는 도덕적인 삶의 강요는 비단 신에 대한 순종 뿐만아니라 국가에 대한 복종까지도 확장이 가능하다고 지은이는 지적하고 있다.


책에서도 잠깐 말했지만 나해한 니체의 책을 읽어볼 생각이 전혀 없는 나에게 이러한 근현대의 철학의 기준점이 되는 니체의 생각을 간략하게나마 들여다 볼 수 있어 좋았다.


열한 계단 - 나를 흔들어 키운 불편한 지식들     

채사장 (지은이) | 웨일북 | 2016-12-08

책소개

어떤 지식은 한 인간의 지평을 넓히지만, 어떤 지식은 오히려 그를 우물에 가둘 수도 있다. 불편한 지식만이 우물을 파는 관성을 멈추게 하고, 굳어버린 내면을 깨트리고, 나를 ‘한 계단’ 성장시킬 수 있다. 이 책은 어느 평범한 인간이 난생 처음 책을 읽고, 질문을 만나고, 깨달음과 깨부숨을 반복해가며 한 명의 지식인으로 성장하기까지의 생생한 기록이다. 

인문학의 최전선에서 독자와 가장 가깝게 만나온 작가 채사장은 이 책을 통해 인문학이 어떻게 삶을 변화시키는지 몸소 보여준다. 그리하여 누구라도 자기만의 계단을 하나씩 밟아나가면 새로운 자신을, 색다른 인생을 만날 수 있음을 말한다. 

문학, 종교, 철학, 과학, 역사, 경제뿐 아니라 예술의 영역까지 아우르며 촘촘히 펼쳐지는 질문들을 따라가 보자. 때론 낄낄대고 때론 울컥하며, 조금 불편해하고 가끔 편안해하며 함께 이 계단을 오르다 보면, 문득 놀라운 곳에 당도해 있을 것이다.


반응형

댓글